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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초기 이민자들의 생활상 멕시코 한인 생활상 Life Style 현지인과 결혼한 안토니오 킹의 가족 (김 씨는 King으로 개명되었다) Antonio King family (Kim became King in Mexico, Choi became Chavez) *** 위의 설명에서 'Choi' 씨는 'Chavez'로 변경되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최' 씨는 'Sanchez'로 변경되었다고만 알려져 있는데 'Chavez'로도 변경되었을 듯... - 최재민 생각... 1955년 메리다에서 결혼한 사리타 리와 헤나로 킹 Marriage of Sarita Lee and Genaro King in merida, 1955 잇친캅 농장에서 한인 결혼식 Marriage of Korean in Hacienda Itzincab 멕시코의 큰 인물 김익.. 2021. 1. 24.
A. 에네껜 농장으로의 멕시코 이민(1905년) 멕시코 이민 Mexico Immigration 멕시코 이민은 1905년 남자 702명, 여자 135명, 어린이 196명 총 1,033명, 그중 독신 196명과 257 가족이 인천을 출발 일본을 경유하여 멕시코 동해안의 베라크루스에 도착하여 유카탄 반도로 이동하여 24개의 농장에 배치되어 4년간의 계약기간 동안 준 노예 생활을 하었다. 일부 농장 주인은 농장에서 태어 난 한인 어린이의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1,033 Koreans left for Mexico in 1905, They mostly worked at henequen farms in Yucatan, Mexico. Unlike Korean farm workers in Hawaii, they were slaves during 4 year contr.. 2021. 1. 24.
망국의 한 딛고 이룬 '멕시코 드림' … 고흥렬 할머니 [어머니] ⑨ 망국의 한 딛고 이룬 '멕시코 드림' … 고흥렬 할머니 [조선일보 2005.05.13 18:46:52] 1905년 5월 15일. 1,033명의 조선인들이 인천항을 출발해 멀리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향해 떠났다. 그들 중에 고희민·김순이 씨 부부가 있었다. 에네껜(Henequen) 농장 주인과 맺은 계약 기간이 4년. 메리다시에 도착했을 땐 숨을 쉴 수조차 없는 무더위에 하늘이 노랬다. 집은 지붕을 갈댓잎으로 덮어놓아서 꼭 외양간 같았다. 그러나 이를 앙다물었다. 가시 돋친 선인장 잎을 하루 2,500개씩 잘라야 하루 일이 끝나는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지만, 그 사이 태어난 맏아들 안고 고향 땅으로 떵떵거리며 돌아갈 생각에 참고 또 참았다. 그때 엄청난 소식이 날아들었다. 1910년 한·일 합.. 2021. 1. 24.
[광복 60주년 특별기획 ⑤ 쿠바] 사탕수수밭의 가난 · 이별 그리고 恨 [광복 60주년 특별기획|코리안 디아스포라⑤ 쿠바] 사탕수수밭의 가난 · 이별 그리고 恨 “카스트로 혁명으로 차별 이겼지만 韓人 정체성 잃고 말마저 잊어” 쿠바 아바나=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지난 3월로 쿠바 이민사는 84년을 맞았다. 그 84년이라는 세월의 두께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억척같은 생존 의지로 켜켜이 다져졌다. 두고 온 고국의 산하를 그리워하기는커녕 생존에 급했던 나날들이었다. 쿠바 이민사는 수탈과 눈물, 생존의 몸부림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뒤섞인 恨의 역사다.카스트로의 쿠바혁명 뒤 높아진 교육 기회에도 불구하고 쿠바 한인들 대부분은 가난을 대물림한 모습이다. 1921년 3월 274명의 조국 잃은 유랑민이 멕시코를 거쳐 쿠바에 닿았다. 노예노동이나 .. 2021. 1. 23.
쿠바 한인 이민사 쿠바 한인 이민사 서 성 철 (재외동포재단) I. 들어가는 말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재외 한인들은 얼추 570만 명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이민과 관련해서는 많은 관심 및 학술적 연구활동이 있어왔고 지금도 그런 현상은 여전하다. 그러나 한인동포들이 사는 또 다른 거대한 지역인 중남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미했고 또 어떤 때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소외되어왔다. 그러나 노동력의 세계적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들은 하와이 이민과 멕시코 이민만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중남미 이민 최초의 나라인 멕시코 이민에 관한 연구는 일천함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정이.. 2021. 1. 23.
회상 : 멕시코 한인들의 삶과 노동 / 최병덕 - 4 - 전에 이어 계속 기자와의 인터뷰 내가 전몰용사들이 안치된 국립묘지로부터 호텔에 돌아온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나는 호텔 프런트로부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메모를 받았다. 그들을 만나러 나가보니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나는 그들이 신문기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호텔 로비의 한 의자에 앉도록 청했다.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그 많은 질문들 중의 하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내가 멕시코 한인회 대표로서 여기 머문 8일 동안 어느 오후 한나절을 제외하고는 기자들이 줄기차게 찾아왔는데 도저히 그들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앞서 수많은 질문들 중에서 하나를 언급했는데, 여기서 나에게 물어온 엉뚱한 질문 하나를.. 2021. 1. 19.
회상 : 멕시코 한인들의 삶과 노동 / 최병덕 - 3 - 앞에서 이어... 8괘와 3효(爻) "4개의 귀퉁이에는 3효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원래는 8개의 3효가 놓여 있던 것입니다. 이것을 한국말로는 팔괘라고 합니다. 즉 우리 국기에는 8개의 3효가 배열되어 있어야 했으나 北西, 南東, 北東, 南西에 해당하는 4개의 방위는 빠진 채 단지 기본방위인 동서남북만을 상징하는 4개의 3효만이 나타나 있습니다." "다시 8개의 3효, 즉 둘레의 표시에 대해 재차 언급하자면 그것은 중앙에 있는 두 개의 주요원리의 3중 조합으로서 4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이렇게 4개로 세분된 도형으로 4대 요소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들은 각각 두 중심원리 중의 하나의 세력의 크기에 의해 또는 그들이 서로 덧붙여져서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 2021. 1. 19.
회상 : 멕시코 한인들의 삶과 노동 / 최병덕 - 2 - 전면에 이어 한인회 대표는 한 달 후 새로운 모임이 있음을 공지하면서 폐회를 선포했다. 간부로 뽑힌 세 사람의 선서식이 있었고, 이들에게 나머지 간부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나자 '대한인국민회' 대표 자격으로 온 방화중씨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다시 돌아갔다. 다음 달에도 정기 총회가 열렸고, 마찬가지로 나머지 간부들이 임명되어, '이사회'의 빈자리는 모두 채워졌다. 우선 세 명의 집행부 이사들에 이어 아래 부서의 담당 간부들이 임명되었다. 1. 감사실장 2. 감사 3. 언론 및 대외홍보 담당 4. 교육 담당 5. 사법 담당관 6. 정책 담당관 한인회 잡행부와 행정부서 간부들에 대한 임명이 일단 끝나자 그들은 매월 1일 정기총회를 갖기로 원칙을 정했고,.. 2021. 1. 18.
회상 : 멕시코 한인들의 삶과 노동 / 최병덕 - 1 교포역설(僑胞歷說) 1973년 최병덕이 멕시코 이민 생활의 경험을 자전적으로 저술한 역사서로 원래는 스페인어로 된 타자본(打字本)인데, 한국어로 번역한 책 이름은『교포역설(僑胞歷說)』이다. 이영숙이 『유까딴의 첫 코리언』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하여 발간하였고, 그 뒤 서성철이 『회상 :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한인들의 삶과 노동』으로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하였다. 최병덕의 멕시코 이름은 호세 산체스 팍(Jose Sanchez Pac)이다. 아버지 최정식(崔貞植)은 1905년에 멕시코로 배를 타고 이민하였던 이민 1세대인데, 어렸을 때 이름은 인천에서 출생하였다고 하여 인출(仁出)이라 하였다. 최병덕은 1962년에 한국과 멕시코가 국교를 맺을 때 멕시코시티 한인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1985년에 사망하였다. 이.. 2021.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