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 목사님들과의 여행
마지막 일정으로 미주 한인 이민역사의
중요한 도시인 중가주의 리들리(Reedley)를
방문하였습니다. 여행 출발 첫날인 월요일 가이드 선생님이
요세미티 방문 후 돌아오는 길에 여기를
방문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여 매우
기대가 되었었습니다.
2004년과 2005년에
'크리스천헤럴드' 신문사에서 "미주 한인 이민 100년 -
태평양을 가로지른 무지개(전 6권)"를 발행할 때 저는 멕시코와
쿠바 편 편집에 참여하면서 하와이 이민자들이 미국 LA와
SF 등지로 들어와서 활동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Reedley... SF와 LA의 꼭 중간쯤입니다.
그때 생소한 지명인 중가주의
리들리(Reedley)에서의 한인 이민자들의
활동상을 들으며 '어찌 이런 역사를 모르고 있었을까?'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리들리시의 한 곳에
1897년 한국에 세워진 독립문 원형을
4분의 1로 축소한 14피트 (4.26미터) 높이의
리들리 [독립문]은 2010년 11월 13일
제막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어떤 기사의
리들리 [독립문] 제막식 기사에서 "리들리시는
미주 한인 이민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다. 하와이에서
이주한 한인 이민 선조들의 첫 정착지였으며
해외 독립자금 조성의 중심지였다"라고
소개(2010/11/20) 하고 있습니다.
(facebook에 글을 올린 다음날
아침에 다시 읽다 보니 바로 윗 문단에서
'첫 정착지'...라는 표현은 조금 무리한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첫 정착지는 아마 SF와 LA였을 겁니다. 즉 '첫 정착지'라는 표현보다는
'초창기 정착지' 또는 '초창기 정착지의 한 곳'으로
표현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블로그에 제가 멕시코 한인 이민사를
간략히 정리하여 올린 포스팅이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멕시코를 방문했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 포스팅 하단 링크를
클릭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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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edley에서 [독립문] 방문 후
이민 선조들이 잠들어있는 공원묘지를
방문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이곳 주민들과 함께
많은 이민 선조들이 잠들어 있답니다.
시간상 많이 찾지 못하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댱셕일"
"大韓人 金士玉" "SARAH LEE / JAMES M LEE" 등
몇 분의 묘비가 눈에 띄었습니다.
"댱셕일" - 물론 지금의 "장석일"입니다.
묘비의 영문 표기에서 'SUK IL'이 아닌 'SUK KIL'로
된 부분이 좀 아쉽네요. 아무튼 2005년 경 미주크리스천헤럴드사에서
화보집 "멕시코 한인 이민사"의 옛 멕시코 이민 선조들의
묘비 사진에서 보던 옛 한글을 여기에서 이렇게
직접 보니 마음이 묘했습니다.
그리고 "大韓人 金士玉" -
이 분의 사망일이 1945년 12월이니
다행히 조국이 일제에서 해방된 소식을 듣고
몇 개월을 더 사셨네요.
"어이 최재민 군, 반가워!
내 얘기 좀 들어줄 수 있겠나?"
"나는 조국을 떠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살았고(모르지만),
미국에서도 오래 살았지."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식민지 삼아 성(Family name)을 바꾸고, 한국말을
빼앗아갔어도 난 일본 사람이 아니야!"
"난 한국인이야, 나는 한국 사람이야!
난 '大韓人 金士玉'이라고!!!"...
"그리고... 그리고 말이야...
한 가지 부탁을 하겠는데... 나를 나의 조상들이 있는
조선 땅으로 데려가 달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몇 분 이민 선조의 묘비를 보며
세월의 무게와 함께 참으로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Rest In Peace!!!
위 석상은 한인 이민 선조의
묘비는 아닙니다. 그 바쁜 중 눈에 띄게 멋있었습니다.
마치 우승 트로피 같았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디모데후서
4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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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민 선조들이
신앙생활을 하던 옛 Reedley 한인교회입니다.
위에도 썼지만 2004년과 2005년 '크리스천헤럴드' 신문사에서
"미주 한인 이민 100년 - 태평양을 가로지른 무지개(전 6권)"를 발행할 때
저는 멕시코와 쿠바 편 편집에 참여하면서 하와이 이민자들이
미국 LA와 SF 등지로 들어와서 활동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생소한 지명인 중가주의
Reedley와 Dinuba에서의 한인 이민자들이
주로 농사를 지으며 Reedley 한인교회와 Dinuba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힘써 지원한
활동상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크리스천헤럴드' 신문사에서
많은 사진들을 보며 나도 곧 찾아가 봐야지...
했었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이번에 갑자기
방문하였지만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니
정말 감개무량이었습니다.
이 Reedley 한인교회는
1919년 2월 한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리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교인들의 수가 50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김형제 상회의 김호, 김형순의 기부로
지금의 위치인 1408 J. Street에 부지를 제공하였고, 1939년
교인들이 특별 기부금('건축헌금'이었겠지요)을 내어
건물을 신축, (같은 해?) 3월 1일 헌당식을
거행하였다고 합니다.
위의 작은 흑백사진의
단체 사진 연도는 어떻게 될까요? 인터넷의
일부 자료에는 '1938년'으로 나오고, 제가 가진
책자에는 '1959년'이라고 나옵니다.
이 사진의 아래 작은
검은색 박스 안에 글씨가 쓰여있습니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 제가 가진 책자의 사진을
돋보기로 확대해서 보니 모두 대문자로
"20th Anniversary Korean Presbyterian Church Reedley Calif"
라고 겨우 보이네요.
즉 교회 설립 20주년 기념 단체사진인데
교회 설립일을 1919년으로 하면 1939년 헌당식 때의
사진이고, 만일 교회 헌당식(1939년) 후
20주년이면 1959년 사진이 되겠습니다.
저는 1959년에 한 표입니다.
이 교회 가까운 곳에
이승만 박사와 안창호 선생이 이 지역을
방문하면 주무셨다는 호텔도 잠시 방문했었는데
그렇다면 이승만 박사와 안창호 선생도
이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때로는
강연도 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교회 바로 앞 공터는
김형순이 갈 곳 없는 노인과 노동자,
한인 유학생들의 숙식을 해결해 주기 위해
건립했던 한인 노동자 기숙사 및
양로원이 있던 자리랍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초기 이민자들은 대부분 타계하고
1970년대에 들어서며 그 후손들은 LA 등 대도시로 이주하며
교인 수가 점차 줄어들어 리들리 한인교회는 1978년에
멕시코계 교회에 팔려 지금까지 히스패닉 교회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멕시칸 교회가
사용하고 있지만 이 리들리 한인교회가 내년이면
100주년이 되는군요...
교회 뒤편에
낡은 창고와 사택이 눈에 띄었고,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에 감이 주렁주렁
맺혀 있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잘 먹지도 않는 감...
아마도 그 옛날 이민 선조가 심었겠지요,
멀고 먼 고국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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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접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Reedley 한인교회와 함께 같은 역할을 했을
Dinuba 한인교회 사진도 인터넷에서 찾아 올립니다.
"Dinuba"는 "다이뉴바" 그랬을 텐데 한글로는 보통 "다뉴바",
즉 "다뉴바한인교회"로 표기되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중가주에서 2 교회가 이민 선조들의 중요한
중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압니다.
Reedley와 Dinuba 어디쯤
이었을 넓고 넓은 농장에서 생산된 싱싱한 야채와
과일들을 LA로 싣고 와서 내리던
모습이라고 합니다.
아마 지금의 LA 다운타운
어디에 이런 야채들을 도매로 넘기는 새벽시장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꽃 도매시장이 있고, 생선 도매시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지금도 이런 새벽 야채 도매시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 야채와 생선들을 중간 상인들이
넓고 넓은 LA 주변 식당들로
배달을 할 것입니다.
당시 "김형제 상회(Kim Brothers Co.)의
김 씨 형제들의 수입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였다는 글을 어디에서 보았습니다.
이런 부를 조국의 독립운동에 얼마나
많이 지원했겠습니까?
위의 2 사진은 무슨 특별 행사를
마치고 찍은 사진 같습니다. 인터넷 기사에는
1920년 3월 1일이라고 하는데 Newsis 가 찍힌
그 사진 하단에 희미하게 (숫자가 틀릴 수도 있지만) '1920. 3. 1.'
그리고 그 옆에 장소 또는 사진 제목이 있는 것
같은데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네요.
아무튼 3.1절 1(?) 주년 기념 퍼레이드
전이나 후였을 것 같고 정말 많은 이민 선조들이 모였군요.
그리고 약간 우측에 보이는 건물은 무엇일까요?
혹시 이 건물이 Reedley (or Dinuba) 한인교회
전신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승만 박사와 안창호 선생이
이 지역을 방문하면 숙소로 사용했다는 호텔입니다.
안창호 선생은 독립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멕시코도 방문했었습니다.
Reedley와 Dinuba의 한인 이민 선조 관련 유적지 안내도
LA에서 곡창지대로 많이 알려졌고,
LA에서 가까운 Bakersfield가 아닌 Fresno 근교로
자리를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그 옛날에 Fresno 근교인
Reedley와 Dinuba가 농사를 많이 짓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초기 이민 선조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LA와 SF
중간으로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제 추측입니다.
넓고도 넓은 농장들 사진 -
우리 일행의 움직이는 버스 속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이 드넓은 농장들 어디에선가 우리 이민 선조들이 열심히 농사를 지어
그 번 수입을 또 열심히 조국 독립을 위해 자금을 SF와
중국 상해로 보냈을 것입니다. ^^
아무튼 이번에 노회 덕분에 아주 유익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
- 2018년 10월 17일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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