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바로 재 이주한 한인들 -
쿠바 한인의 이민 역사는 멕시코로 들어온 한인 이민자 가운데 300여 명이 보다 나은 삶을 찾으려고 1921년 3월 25일에 쿠바의 마나티(Manati) 항구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곧 한인 이민자들은 사탕수수 농장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 쿠바에 들어왔지만, 설탕값의 급격한 폭락으로 꿈은 사라졌고, 고된 노동으로 인해 벗어나고 싶었던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한인들은 점차 마탄사스(Matanzas), 카르데나스(Cardenas), 아바나(Habana) 등지에 정착하였고, 정착한 곳마다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지방회를 설립하여 권익 보호와 신분 보장을 꾀하는 한편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민족 교육 실시와 독립운동 지원 등을 전개하였다. 특히 쿠바 현지의 동화 과정에 맞서 언어, 종교, 풍습, 음식, 노래, 음악, 춤 등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이어가려고 했던 눈물겨운 노력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노동 국유화법, 외국인 권리규정, 쿠바 혁명 등 쿠바의 정치 · 사회 · 경제적 변화에 따라 많은 한인 후손들이 쿠바인으로 동화되어 갔다.

위의 지도에서 메리다 도착을 1905년 4월로 되어있는데 4월이 아니고 5월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마나티항 입출항 기록부

쿠바 마딴사스(Matanzas) 지역의 엘볼로(El Bolo) 한인농장 - 1920년대

쿠바의 마딴사스 한인촌의 한인 어린이들


엘볼로(El Bolo)에 세워진 민성학교의 학생과 교사들 - 1922년


엘볼로 한인촌에 있는 마딴사스 한인회관 - 1930년대

대한여자애국단 창립 17주년 기념 - 1936년 8월

[대한독립선언 제18주년 기념대회] 즉 3.1절 18주년 기념행사였겠지요. 그러면 1937년인듯합니다.

1938년 결성된 대한여자애국단 마딴사스 지부 임원들

쿠바 한인 사회의 주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박창운(Ramon Pack)의 가족, 1940년대
경제적으로 성공한 - 그런 설명도 보았는데 그 부분은 생략합니다.
오래전 어떤 책에서 이 사진을 스캔했는데 화질이 좋지 않네요.

1942년 2차 대전 중 박두현(Alberto Pak)에게 발행한 재미한인연합회의 신분증
위와 아래의 사진이 같은 신분증 앞면과 뒷면일까? 아니면 다른 신분증일까?
왜냐하면 위에는 Alberto Pak으로 타이핑되어있고, 아래에는 Alberto Pack(Paek?)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요.

이성기(Antonio Lee)의 재쿠바 대한인국민회 회원증 - 1941년
위 왼쪽에서 3번째 줄에 세로로 쓰인 대한민국 二十三(23)년은 몇 년일까?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대한민국에서 사용한 연호(年號)로, 대한민국이 독립선언을 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서기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元年)으로 한다." - 위키백과
그러면 대한민국 23년은 1941년입니다. 그래서 일부의 글에 1943년 또는 1948년으로 되어있는데 1941년으로 표기합니다.

한 한인의 신분증 출생지 표기(빨간색 박스)가 Corea, Japon 즉 한국과 일본 2개가 병기되어 있다. 쿠바주재 멕시코 영사관 발행

1942년 미국 독립 기념일 행사에 참가한 쿠바의 한인들
(위 사진에 대해 이런 제목이 어떻게 붙었을까? - 최재민 생각)

엘볼로 한인촌의 한인 야구팀 - 1945.
(사진이 사라져서 찾고 있습니다)
야구팀 이름이 멋있네요.
"Llave de Oro" 즉 "Golden Key"입니다.


1952년 미국 와싱톤주재 한국 대사의 쿠바 마딴사스 엘 볼로 한인촌 방문
(사진이 사라져서 찾고 있습니다)
관련 사진을 찾아보려 구글에 서치 하니 AI가 이렇게 대답하네요.
"1952년 한국 대사가 쿠바를 방문했다는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1949년 쿠바가 한국을 승인했지만, 1960년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 이후 북한과 수교하면서 한국과의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1952년에는 한국과 쿠바가 공식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으며, 한국 대사가 쿠바를 방문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1952년에는 쿠바가 바티스타 정부였고,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과 쿠바 사이에 공식적인 외교 교류가 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찾기 어렵습니다. 다만, 1950년대에는 한국과 쿠바 사이에 간접적으로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쿠바는 한국전쟁에 UN 결의에 따라 대한 지원을 했고, 한국 정부도 쿠바를 승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한국 대사가 쿠바를 방문했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습니다." - AI 대답(2025년 6월 1일)


쿠바 한인 임은조와 크리스티나 장의 결혼식, 1962년
(사진이 사라져서 찾고 있습니다)


멕시코 대통령 방문 환영식에 나온 쿠바 한인
(사진이 사라져서 찾고 있습니다)

하바나 예수 마리아(Jesus Maria)길에 있던 대한인국민회 지방회관과 초대 회장 서문경(Suhr, MoonKyung)


어떤 행사인지 깔끔하게 잘 차려입고 사진을 찍은 것으로 봐서 상당히 중요한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사진이 위의 "멕시코 대통령 방문 환영식에 나온 쿠바 한인들" 아닐까?





쿠바의 한 한인 후손의 등에 새겨진 태극마크. 위에는 "KOREANO"(한국인)라고 새겨있네요.
가슴이 찡~~~ 합니다.

임천택(Ernesto Lim)이 쓴 “쿠바이민사’, 태평양 주보사 1954년 발행
쿠바 한인 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였던 임천택(林千澤, 1903~1985)이 지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쿠바 한인 이민자의 삶과 민족운동의 상황 등을 최초로 정리하여 엮었다. 임천택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마탄사스지방회(Matanzas地方會)와 카르데나스(Cardenas)지방회를 결성하고 운영하였던 쿠바 한인 사회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평생을 쿠바 한인 사회는 물론 한인 2세대에게 한인의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헌신하였다.
임천택은 쿠바 한인 이민의 역사를 정리하여 후세에 남기려는 바람을 가졌다. 그 심정으로 쿠바 한인 이민사를 정리한 「쿠바 재류 동포의 이주 20년 역사」라는 제목의 글을 『신한민보』 1941년 4월 3일자~7월 17일 자에 11회에 걸쳐 게재하였다. 이 글을 통해서 쿠바 한인들이 겪었던 고난과 역경,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 모습들을 생생히 전하면서, 민족 자부심을 잃지 않기를 희망하였다. 그 뒤 이 글을 보완하여 1954년 2월에 하와이 동지회(同志會) 중앙부에서 운영하는 태평양주보사(太平洋週報社, The Korean Pacific Weekly)에서 『큐바이민사』를 발간하였다.

'쿠바의 한인들(Cubano Coreano)'
쿠바 한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임천택 씨다. 그는 초기 쿠바 한인들의 삶과 역사를 글로 남겼다. 그의 딸 마르타 임 김(Martha Lim Kim) 교수는 마탄사스 교육대학 철학교수로 20년(일부에는 33년) 간 봉직하다가 93년에 은퇴한 쿠바의 대표적인 한인 지식인이다. 마르타 임 교수는 남편인 쿠바의 역사학자 라울 루이스와 함께 아버지가 남긴 글을 바탕으로 '쿠바의 한인들(Cubano Coreano)'이라는 역사책을 저술했다. 2000년 발행.


한인 쿠바 이민 80주년 기념탑(2001년)과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탑(2005년).

2005년 5월 25일, 미주중앙일보



//////////////////////////////////////////////////////////////////////////////////////////////////////////////////
아래 사진은 양념으로 추가

Cuba를 방문하여 Fidel Castro를 만나는 김장환 목사. 2000년 1월

Cuba를 방문하여 Fidel Castro에게 성경책을 기증하는 김장환 목사. 2000년 1월
'▷ 멕시코 & 쿠바 이민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티화나 거주 한인 후손들 모임에서... (0) | 2021.01.25 |
|---|---|
| ⧯ 오늘날의 이민 후손들 - (0) | 2021.01.25 |
| ⧯ 이민자들의 신분증 및 각종 증서들 (0) | 2021.01.25 |
| ⧯ 사진으로 보는 초기 이민자들의 생활상 - (0) | 2021.01.25 |
| ⧯ 에네껜/Henequen 사진들 - (0) | 2021.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