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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 2019 사역 ----

2004년 : 시날로아 전도 여행기

by 최재민 선교사 2020. 10. 4.

 

 

“Choi! 가지 마, 가지 말라구…”

 

 

 

♡♡ !

이곳은 멕시코의 Sinaloa 주입니다.

티화나에서 저를 포함 5명의 형제가 111() 12시쯤 출발해서 40여분의 저녁 식사 시간과 주유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쉬지 않고 운전해서 이곳에 왔는데 거의 22-23시간을 달려왔습니다. 세상에… 

차는 완전히 로시난테. 그러니까 1985년형 18만 마일 이상 된 차로 미국에서 달리던 차도 아니고 험한 멕시코 도로에서 달리던 차이니 훨씬 더 늙어보였지요. 정말 이 차로 잘 다녀올 수 있을지, 아니 시날로아까지 갈수나 있을까하는 걱정부터 앞섰었습니다

아찔아찔한 위험한 산길들과 낭떠러지들이 얼마나 겁나게 하던지요. 아휴돌아갈 길을 생각하면 다시 아찔합니다

 

 

 

출발 준비하던 모습입니다.

 

 

 

아무튼 이곳에 오자마자 정말 귀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 <미션> 아시죠? 중남미를 철저히 캐톨릭으로 만든 일파가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회입니다. 그동안 이 예수회의 흔적을 좀 보고 싶었었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 도미니카에도 그런 것들이 많았을 텐데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아무튼 그들(예수회)이 지은 성전이 폐허된 상태이지만 그래도 성벽의 일부분 등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17세기 예수회의 흔적입니다. 정말 저에게는 크나큰 흥분이었습니다. 마침 우리가 머무는 교회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므로 벌써 두 번을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이 그 위에 올라가서 뛰놀고 그러더군요. 이 근처에 작은 곳도 있다는데 가보고 싶습니다

 

티화나에서 시날로아까지 오는 동안 어디는 Grand Canyon가는 길처럼 황량한 산들의 연속이고, 어디는 마치 Bakersfield를 지나는 것처럼 끝도 없이 밭이 펼쳐지고, 어디는 바다가 없는데도 마치 바닷가 가까이처럼 모래밭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피곤한 중에도 모래들이 바람에 날려 도로 위를 지나가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들은 가는 동안 많은 검문소를 거쳐야 했는데 그들에게와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길을 알려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황에 따라 전도를 하였습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소변보면서도 전도를 하기도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야기가 이어지면 화장실 앞에서 기도도 해주고 그랬답니다

 

 

 

 

 

 

아무튼 이곳 시날로아의 한 교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매일 낮에는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를 하였습니다. 선교지 도미니카를 떠난지 오래되어 꼭 한번 도미니카를 가보고 싶었는데 꼭 도미니카의 시골 모습들과 비슷해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도미니카에서 돼지를 개처럼 줄을 달아 나무에 묶어서 기르는 것을 보고 많이 웃었는데 이번에 또 이런 모습을 보고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집의 모양들은 달랐지만 시골 정서는 어디나 같았습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달라하시면서 전도를 하셨는데 만일 주님께서 오늘날 멕시코에서 제자들과 전도를 하신다면 아마 “Dame un cafe, Por favor(다메 운 까페 뽈 파볼; 커피 좀 주시겠습니까?)!” 그러시면서 전도를 하시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참 은혜가 되더라구요

 

그리고 밤에는 길 가의 마당이 넓은 집에서 앰프도 빌리고 전등도 달고 의자도 교회에서 싣고 와서 전도집회를 하였습니다. 첫날은 사람이 적었지만 둘째 날부터 조금씩 많이 왔습니다. 셋째 날과 마지막 날인 넷째 날은 마당을 꽉 매운 아름다운 집회였습니다

 

 

 

 

 

 

낮의 가정방문에서는 특히 두 분의 할머니가 기억에 남습니다. 먼저 만난 89세의 할머니. 현재 집에 혼자 거주하신다는 데 젊었을 때 굉장한 미인이셨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손톱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하셨고 옷도 예쁘게 입고 계셨고 그 주름진 손도 따뜻하였습니다. 집도 곳곳을 예쁘게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시는 말씀은 내 가슴은 무겁소.”, “내 삶은 너무나 쓸쓸하고 무겁소.” 그러시며 남편과 일부의 자녀들과 친구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계속 슬퍼하셨습니다. 음식은 안 들고 술만 마셔서 상당히 알콜에 중독된 듯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 처음 듣는 듯이 “De vera(정말이냐)?”, “De vera?”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오는 날까지 걸핏하면 “De vera?”, “De vera?” 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 집회에 우리가 가서 모시고 나왔는데 영접기도문을 따라 하면서 얼마나 우시던지요

 

그리고 다음날 만난 107세의 할머니. 그 분은 그리스도인으로 1년 전 쯤 넘어져서 낡은 침대에 누워계셨는데 정말 그렇게 왜소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가운데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 주님… 

 

 

, 베르나르디노(Bernardino) 형제. 우리와 2-3일을 같이 지냈는데 아무 때나 어디서나 찬양을 불렀습니다. 멕시코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은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정말이지 가슴이 찡- 합니다. 고통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장미꽃과도 같았습니다. 9살땐가 9년전엔가 자전거 사고가 났는데 어떻게 양 손 모두 손가락이 붙어버렸습니다. 엄마는 어렸을 때 집을 나갔고 지금은 아버지와 둘이만 산다는데 어떻게 먹고 사냐고 물었지요. 4거리나 시장 등지에서 노래 부르면 사람들이 던져준 동전으로 먹고 산다고... 그러한 어려운 가운데도 어떻게 이렇게 고결하게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지 볼 때마다, 찬양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서 혼났습니다

 

 

 

 

 

 

그리고 그쪽 동네에서는 사람들 이름 중에 “Jesus”는 애칭으로 “Chuy”라고 부르더군요. 동네의 한 다리 이름도 심지어 추이”. 전도 다닐 때도 마을에서 사람들이 초이하고 불러서 나(Choi)를 부른 줄 알고 뒤돌아보면 내가 아니고 추이더라구요

 

그리고 어떤 형제가 여기서 2-3시간 거리에 “Choi”라는 동네 이름이 있다고 해서 “De vera?”. 그래서 열심히 지도를 찾아보았지요? “Choi”가 아니고 “Choix”더군요. 그러나 이들도 끝의 “s”“x”를 잘 발음하지 않으니까 “Choi”“Choix”“Chuy” 그게 그거 아닙니까

 

그런데 문제는 다음. 지금까지 멕시코에 오가며 가장 무서운(무거운) 말은 사람들이 언제 다시 옵니까?” 이렇게 물을 때 대답하기 어려운, 나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말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베르나르디노 형제가 나에게 한 말

 

“Choi, No te vaya!” “No te vaya!” 

“Choi, 가지 마. 가지말라구” 

 

 

그동안 정말 가보고 싶던 멕시코 본토, 이렇게 멋진 기회에 다녀왔습니다. 왕복 거리는 약 2,000마일(3,600Km,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는 480Km) 이었습니다. 팀장 및 설교 Humberto 목사, 간증 및 노련한 운전자 Antonio 형제, 목소리 크고 찬양 잘하는 Alvarro 형제, 차 정비 및 모든 잡부 Mario 형제, 그리고 분위기 메이커 나. 정말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참 좋은 전도여행이었습니다. 할렐루야! ♡ 

 

 

 

 

내 노트북 컴퓨터도 가지고 갔는데 중간에 아이들에게 "Jesus"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녁 집회 

 

어느 날 저녁 - 전부 Taco 집으로... 

 

다른 날 저녁 집회 .... 

 

돌아오던 길에도 차가 고장나서 한참 고생...

 

 

 

 

*** 위의 글은 2004년 11Sinaloa주 전도여행을 다녀와서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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