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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 여행 - 추억 -----

🌿🌿 관포지교(管鮑之交)

by 최재민 선교사 2020. 11. 22.

 

 

 

옛날 중국 춘추시대의 제(齊)나라에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는데, 그 이익을 관중이 혼자 거의 독차지하였으나 포숙아는 관중을 욕하지 않았다. 관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관중이 포숙아를 위해서 일을 하다가, 도리어 포숙아가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포숙아는 관중을 원망하지 않았다. 일이란 운이 없을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전쟁터에 나가서 지고 도망쳐도 포숙아는 관중을 비겁자라고 욕하지 않았다. 관중에게는 늙은 어머니가 계셔서 관중이 죽으면 부양할 사람이 없어지고, 관중의 어머니가 비탄에 잠겨 슬퍼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이가 좋은 두 친구는 당시 제나라의 두 왕자의 선생이 되어 관중은 두 왕자중 형인 규(糾)를 모시고 노(魯)나라로 망명을 가고, 포숙아는 동생인 소백(小白)을 모시고 거(莒)나라로 망명해 갔다. 왜냐하면 두 왕자의 큰형인 양공(襄公)이 왕이 되었는데, 그가 매우 포악했으므로 때를 기다리기로 하고 망명한 것이다. 


그러던 중 양공이 사촌동생인 무지(無知)의 반란으로 죽고 무지도 부하에게 죽게 되자, 두 형제는 각기 왕이 되려고 제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관중은 소백 왕자가 돌아오는 길을 지키고 있다가 독화살을 쏘아 소백의 배를 맞혀 말에서 떨어지게 하였다.

 

 

소백은 배에 찬 금으로 된 혁대에 활이 맞아 전혀 다치지 않았으나, 말에서 떨어지면서 죽은 시늉을 하여 영구차를 준비시키고 장례식을 치르게 하였다. 신중한 관중이라도 소백 왕자가 죽은 것으로 알고 의기양양하게 돌아가 규 왕자를 모시고 제나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소백 왕자는 제나라에 먼저 돌아와 이미 왕이 되어 있었고, 포숙아의 군대는 규 왕자의 군대를 섬멸했다. 규 왕자는 노나라에서 죽게 되었고 관중은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이때 포숙아는 제의 환공(桓公)이 된 소백 왕자에게 이렇게 간청했다. 


"주군께서 제나라의 국왕으로 만족하신다면 저만 있어도 충분하나 천하의 패자가 되시려면 관중을 재상으로 앉혀 중용(중하게 씀)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관중은 또 다시 친구인 포숙아의 도움으로 자기가 죽이려 했던 왕을 보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우정을 管鮑之交(관중과 포숙아의 사귐)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