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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 소망 - 사랑 .....

🌺🌺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일곱 가지 이유

by 최재민 선교사 2020. 12. 6.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일곱 가지 이유

-- 어느 과학자의 증언 --

 

  크레시 모리슨

 

 

 

우리는 아직도 과학시대의 동틀 녘에 살고 있다. 새벽의 햇빛이 밝아옴에 따라 빈틈없는 창조주의 훌륭한 솜씨는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이제 어마어마한 발견을 했으니 그것은 과학 하는 겸허한 정신과 지식에 뿌리박은 믿음에 따라 깨달음에 한층 더 접근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내 자신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근거를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 : 우리는 흔들릴 수 없는 수학적 법칙을 통해 우주가 위대한 공학적 지능에 의해 설계되고 창조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다

 

 

동전 10개에다 1에서 10까지 번호를 매겨 호주머니에 넣고 힘껏 흔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서 1번에서 10번까지 차례로 끄집어 내 보기로 한다. 동전은 호주머니에서 하나씩 끄집어 낼 때마다 다시 집어넣고 잘 흔들기로 한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처음에 1번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은 10 1이다. 1번과 2번을 잇달아 집어 낼 기회는 100 1. 1,2,3번을 연달아 끄집어 낼 가능성은 1,000 1 이런 식으로 확률은 자꾸 줄어든다. 그래서 1번에서 10번까지 차례로 뽑아낼 수 있는 확률은 100억 분의 1이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숫자에 이른다

 

같은 이치로 이 땅위에 생명이 지탱되자면 너무나도 엄격한 조건들이 숱하게 갖추어져야 하는바, 그 숱한 조건들이 순전히 우연히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존재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지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는 지구, 그 지구의 적도에서의 속도는 한 시간에 1,600km이다. 만약 그 회전 속도가 시간당 160km라면 낮과 밤의 길이는 지금보다 10배나 길어지고, 긴 대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초목을 태워 버리고, 긴 밤사이에는 무서운 추위로 혹시 살아남은 싹이라도 얼어 버릴 것이다

 

또한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태양은 그 표면온도가 6,000에 달하는데 우리 지구로 말하면 거기에서 꼭 적당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꼭 알맞게 떨어진 이 영원한 불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준다. 태양이 만약 지금의 절반쯤만 빛을 보낸다면 우리는 얼어 죽을 것이고, 지금보다 절반쯤 더 보내 주면 다 타 죽을 것이다

 

지구는 23˚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때문에 계절이 바뀐다. 만약에 지구가 그처럼 기울어져 있지 않았다면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남쪽과 북쪽으로 몰려 땅위의 얼음의 대륙을 이루었을 것이다. 또한 달이 만약 지구에 지금보다 더 가까이 8km정도만 떨어져 있다면 거대한 밀물과 썰물 때문에 우리가 사는 대륙은 하루에 두 번씩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심지어 산까지도 오래지 않아 깎여 나가 버릴 것이다. 지각(地殼)이 지금보다 3m만 더 두꺼웠더라도 지구에는 산소가 없어 여하한 동물도 살 수 없을 것이다

 

바다가 지금보다 몇 m만 더 깊었다고 치자. 탄산가스와 산소를 모조리 흡수해 버려 지구에는 여하한 식물도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이상에서 든 것과 같이 그 밖의 수많은 사실로 미루어 우리 지구상의 생명이 우연히 생겼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둘째 : 각자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예(多藝)로운 재간을 가진 것이 生命이니 이 또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지성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이다

 

 

생명 그 자체가 무엇인지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했다. 그것은 무게도 크기도 없지만 힘을 지니고 있다. 뻗어나는 뿌리가 바위를 깨뜨리듯 생명은 물과 땅과 공기를 정복했으며 자연의 원소들을 다스려 그들을 해체시키기도 하고 다시 결합시켜 새로운 형태로 바꾸기도 했다. 생명은 조각가와도 같이 모든 생물의 형상을 빚는다. 생명은 또한 화가로서 나뭇잎 하나하나의 얼개를 마련하고 꽃송이 하나마다 그에 어울리게 색칠을 한다. 생명은 음악가로서 온갖 새들이 사랑의 노래를 지저귀게 가르치고 벌레들에게 온갖 소리로 어우러진 음악으로 서로를 부르는 법을 가르친다

 

생명은 숭고한 화학자로서 갖가지 열매와 향료에 맛을 들이며 장미에 향기를 주고 물과 탄산을 섞어 당분과 나무로 바꾸며 그러는 동안 동물이 숨 쉬고 살 산소를 내 놓는다

 

원형질(原形質) 한 방울을 보라. 거의 눈에 보이지 않고 투명한 우무같이 생긴 것이 이 원형질이건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태양에서 에너지를 끌어내기도 한다. 이 세포 하나, 이 맑고 안개 같은 미세한 방울 하나에는 생명의 씨앗이 간직되어 그것을 크고 작은 온갖 생물에 나누어주는 힘을 갖추고 있다. 모든 생명이 이 작은 방울에서 나왔고 따라서 그 힘은 지구상의 나무와 풀과 짐승과 사람들보다 한층 더 크다. 자연이 생명을 창조했다고는 볼 수 없다. 불에 탄 바위와 소금기가 없는 바다가 생명창조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땅위에 생명을 가져왔을까

 

 

 

셋째 : 동물이 갖춘 지혜를 볼 때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피조물들에게 본능(本能)’을 불어넣어 주신 선하신 창조주(創造主)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연어는 바다에서 몇 년을 보내다가 제가 태어난 지류가 흘러드는 바로 그 강가를 따라 모천(母川)으로 되돌아간다. 어린 연어가 먼 길을 그렇게도 정확하게 따라 모천으로 돌아 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만일 그 연어를 다른 지류에 옮겨 놓으면 제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당장 알아차린다. 그래서 다시 강으로 내려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자기의 냇물을 찾아가 알을 낳고 죽는 자신의 운명을 어김없이 다한다

 

이보다 더 풀기 어려운 신비는 뱀장어의 생리이다. 이 놀라운 물고기는 성장하면 자기네들이 자란 도처의 연못과 강을 떠나 깊은 바다로 옮겨간다. 가령 유럽에서 자란 뱀장어들은 모조리 어림없이 대서양 수만리 바닷길을 가로질러 한 곳, 버뮤다 부근의 한없이 깊은 심해(深海)로 옮아간다. 거기서 알을 낳고 죽기 위해또한 자기들이 망망대해 속에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몰라야 할 어린 장어 새끼들은 어미들이 따라온 똑같은 길을 따라 어미들이 떠나온 바로 그 해변으로 돌아간다. 

 

바로 그 해변 뿐 아니라 거기서 다시 어미들이 자라난 똑같은 강, 호수, 연못을 찾아간다. 여태까지 유럽에서 잡힌 아메리카뱀장어는 한 마리도 없고 아메리카 수역에서 유럽뱀장어가 잡힌 예도 없었다. 자연은 심지어 유럽뱀장어의 성숙기를 한 해 또는 그 이상으로 약간 더 늦추어 주었다. 상대적으로 오랜 여행 시간을 메워 주기 위해서. 이와 같은 회귀본능(回歸本能)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넷째 : 인간은 이와 같은 짐승들의 본능 외에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으니, 사람이 가진 추리하는 힘이 그것이다

 

 

인간 이외의 어떠한 짐승도 아직까지 열을 세었거나, 열의 뜻을 이해 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듣기에 아름답지만 한계가 있는 피리소리와도 같은 것이 본능이라면, 반면 온갖 악기들이 내는 모든 소리를 담은 오케스트라와 같은 것이 인간의 두뇌라 할 것이다. 이 네 번째 이유에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오로지 인간이 인간된 이유는 우주를 창조하신 그 지적존재(知的存在)’의 특별한 은총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인간의 그러한 사유능력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족하다 할 것이다

 

 

 

 

 

 

다섯째 : 온갖 생물이 만들어진 섭리는 경이로운 유전인자(遺傳因子)’와 같은 현상에서도 입증이 된다

 

 

유전인자라는 것은 너무도 작은 것이어서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유전인자를 전부 한 곳에 모은다 해도 골무만한 크기도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생물의 어느 세포에도 들어 있고 모든 인간과 동물과 식물의 특성을 푸는 열쇠를 쥔 것이 유전인자이다. 골무 하나는 40억 인간의 특성을 모조리 담기에는 너무도 작은 그릇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생물의 진화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즉 유전인자들을 내포하는 실체로서의 세포에서 시작된다. 초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을 이 유전인자라는 것이 지구 위의 온갖 생명을 절대적으로 지배한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바로 창조적인 지성의 심오한 재간과 섭리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른 어떠한 가설로도 이를 설명할 수 없다

 

 

 

여섯째 : ‘대자연이 다스려지는 이법(理法)’을 볼 때 오직 무한한 지혜만이 그와 같은 빈틈없는 질서를 예견하고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여러 해 전 어떤 사람이 선인장 한 종류를 오스트레일리아에 갖다가 울타리에 심은 일이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그 선인장에 대한 천적(天敵)이 없었기 때문에 그 선인장은 금방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식물은 영국 전체만한 지역으로 번져 그 지역을 온통 뒤덮어 버렸다. 그리하여 도시와 마을에서 주민들을 몰아내고 농장을 망쳐 놓았다. 이 선인장의 바다를 막을 방도를 찾아보려고 갖은 애를 쓰던 끝에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곤충학자들을 동원해 온 세계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곤충학자들은 마침내 선인장만 먹고살며 다른 것은 일체 먹지 않는 벌레를 찾아냈다. 그 벌레는 쉽게 번식시킬 수 있는데다가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그 벌레의 천적도 없었다. 이 벌레들을 풀어놓았더니 그들이 선인장을 모조리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곧 선인장의 피해는 물러갔는데 선인장이 없어지기 시작하니까 그 벌레들도 자연 수가 줄어들고 선인장이 더 퍼지지 않게 견제할 만큼 조금만 남게 되었다

 

우주에는 언제나 이러한 견제와 균형이 마련되어 왔다. 벌레와 같이 빨리 번식하는 동물이 지구를 뒤덮어 버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에겐 사람과 같은 허파가 없기 때문이다. 벌레들은 기관(氣管)으로 숨을 쉬거니와 그 기관은 벌레의 몸통이 자라도 더 크게 자라지를 않는다. 지금껏 덩치가 큰 벌레가 나오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다. 벌레들에 대한 이러한 신체적 견제가 없었다면 우리 인간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령 사자만큼 덩치가 큰 말벌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일곱째 : 우리 인간이 신()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의 존재를 입증하는 뚜렷한 증거이다

 

 

이라는 개념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생물도 갖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설계와 뜻하심을 밝혀주는 일체의 증거와 함께 위대한 진리를 가려내게 될 인간 특유의 거룩한 기능, 즉 인간의 상상력이라 부르는 기능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인간, 오로지 인간만이 그 힘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증거도 찾아낼 수 있다. 인간의 이 상상력이 열어 놓는 시야는 끝간데가 없다. 

 

실로 인간의 상상력이 완성되어 영적 현실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설계와 뜻하심을 밝혀주는 일체의 증거와 함께 위대한 진리를 가려내게 될 것이다. 즉 천국은 어디에나 그리고 무엇에나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곳마다 계시고 만물에 담겨 있으되 그 어느 곳보다 가장 가까이,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계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다음의 성경말씀이 말해 주었듯이 우리의 상상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참된 진리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나타내 줍니다”(시편 19:1). 

 

 

 

** 필자 크레시 모리슨은 뉴욕 아카데미 원장을 지낸 미국의 유명한 과학자

 

** 이 글은 1930(?)년대 Reader's Digest에 실렸던 글인데 독자들의 요청에 의하여 다시 실린 글로 한국판 Reader's Digest에는 1980 10월호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