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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 쿠바 이민사

5. 멕시코 이민 선조의 고생에 대한 필자의 견해

by 최재민 선교사 2021. 2. 8.


 
멕시코 이민에 대한 필자의 견해



멕시코 한인 이민사에 대한 글을 쓰신 분마다 이민단 모집책이었던 마이어스(John G. Meyers)는 돈밖에 몰라 가난한 대한의 백성들을 이역만리 멕시코에 노예처럼 팔아먹은 사기꾼이고, 나쁜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 더구나 이후에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멕시코 이민을 주선하려 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한 정부는 백성들이 고생하게 될 아무것도 모르고 여권만 내주었느니, 이민자들은 모두 기민(속아서 온 이민)와서 노예 같은 생활을 했느니... 물론 이러한 부분을 인정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 장을 마무리하며 요즈음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만일 이분들이 이민을 가지 않고 모두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부분은 잠시 후에 다시 거론한다.
 

 




이사진은 에네껜을 묶어 나르는 모습인데 

이민 초창기가 아닌 훨씬 후기(1950s)의 모습이다.

 

 

 

▷ 마이어스의 이민 모집에 대한 비난에 대하여. 

 

그가 비판받는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멕시코 유카탄에서 우리 이민단원들이 노예처럼 고생할 것을 알고도 모집을 했고, 이민 후에는 심지어 그 생활을 목격한 후에도 그는 후에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멕시코 이민을 주선하려 했었다는 점이다. 그는 과연 돈밖에 몰랐을까? 물론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고 만일 그렇게 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아무튼 멕시코 이민은 한번으로 그쳤는데 이는 앞에 인용한 중국인 허훼이의 편지 사건도 있었지만 일본의 만행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일본측이 이민의 문호를 닫았던 것이다. 좋게 표현하면 마이어스가 우리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고 백성들을 멀리 이주시키려던 뜻도 있지 않았을까? 이OO 님의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에 마이어스의 장황한 편지가 나온다. 물론 그의 편지의 진실성 여부는 모르겠지만 만일 더 많은 한국인이 멕시코 쪽으로 왔었더라면 물론 고생도 하였겠지만 -일본에 끌려가서 탄광에서 죽도록 노동하다가 다치고 병들고 사고로 죽은 분들의 이야기도 알고 있다- 멕시코에 정착을 하다가 일본의 만행을 전세계에 알리기도 하고 독립군 조직에 후원금도 대는 그런 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우리 한국민족이 누구인가? 고생? 더위? 추위? “너 물러가라!”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 정부의 여권 발급에 대하여. 

 

물론 정부에서 현지답사라도 한 후에 이민 여부를 결정하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 당시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1960년대, 70년대에 남미로 농업이민을 할 때도 멋지게 보이는 사진 몇 장 보고 이민가지 않았는가? 이때에도 계속 시끄럽고 문제가 있었다. 물론 일본이야 철저히 사전 조사해서 남미 이민을 했지만 우리는 1960년대에도 그렇게 이민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겠지만... 

 

 

▷ 노예 같았던 농장 생활에 대하여. 

 

이OO 님의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에는 멕시코 각지에 흩어져있는 이민 후예들의 많은 인터뷰 기사가 나오는데 정말 엄청난 고생들을 하였다. 인터넷에서 다른 기사들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필자 역시 농장주들과 감독들의 행위에 대단히 화가 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만일 이분들이 이민을 가지 않고 모두 조국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에 있었으면 모두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만큼의 수입원이 될 수 있는 일자리들이 충분했는가? 

 

당시 조국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 그야말로 열강들 앞에 풍전등화와 같았고 침몰하는 배와 같지 않았는가? 물론 쓰러져가는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겪는 것도 의미는 있겠으나 주변 상황들이 그렇게 같이 고생하도록 가만두고 있지도 않았지 않는가? 

 

기울어져가는 조국의 운명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워 자살한 백성들이 얼마인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군이 되어 아시아 여러 곳에 배치되어 어처구니없는 전쟁에 나가 총알받이가 된 젊은이의 수가 얼마인가? 지금까지도 문제를 앉고 있는 정신대로 끌려간 젊은 여인의 수가 얼마인가? 

 

오늘날 중국에, 구소련의 이곳저곳과 사할린에 흩어져있는 한인들은 모두가 원해서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아는바 아닌가? 이 말은 카스트로가 혁명을 시작하면서부터 사용한 구호인데 쿠바의 화폐에는 지금도 “Patria o Muerte”라고 써있다. “조국이냐 죽음이냐”이다. 다시 말하면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이다. 

 

그야말로 일제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좁은 길이 아니었겠는가? 일제시대에 유린당한 국토는 또한 어떠한가? 철도 건설? 항만 건설? 이 모두 우리 산업 수탈과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갑자기 부설한 것 아닌가? 이런 일에 강제로 동원돼서 일했던 우리 선조들의 고난과 울분은 어떠한가? 일제시대의 만행에 대해 많이 듣고 일부의 사진들로 보아 왔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정말이지 치가 떨린다. 

 

이민의 후손들은 에네껜 농장에서 고생했던 생활상을 그대로 기록하여야 하겠지만 동시대에 일제의 만행을 겪으신 분들이나 잘 아시는 분들은 멕시코 이민사를 쓸 때 좀 다른 각도에서 글들을 써야 할 것이다. 요셉과 느헤미야와 다니엘은 모두 어떤 사람들인가? 우선 크리스천 작가들만이라도 가나안땅을 정탐했던 12정탐군중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시각에서 재조명된 글들을 써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005년 멕시코 이민 100주년을 전후로 해서 본인이 썼던 

               글로 다음 카페에서 옮겨왔습니다. 즉 최근에 쓴 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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