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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 소망 - 사랑 -----

🌺🌺 한국에서 사역했던 미국 선교사님들 1

by 최재민 선교사 2020. 10. 8.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복음전파와 봉사활동을 하며 젊음을 바쳤던 미국 선교사들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산골마을에 모여 살고 있다. 8순이 넘은 이들은 젊은 시절에는 한국을 위해 봉사한데 이어 은퇴후에도 조용히 북한과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의 손길도 계속 뻗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부의 블랙 마운틴시. 이곳은 미국 동부의 남북을 잇는 애팔래치아 산맥의 끝 자락에 있는 블루 리지 산속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인구 1만여명의 조용한 산골마을.

이곳에는 해방시기부터 90년대초까지 한국에서 짧게는 1-2년 길게는 20-30년, 교육.의료 등 각 분야에서 봉사하다가 은퇴한 미국 선교사 20여명이 모여 살고 있다.

마리엘라 프로보스트 할머니(87)도 그중 한 명. 부모가 일제시대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함에 따라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전주예수병원과 대구동산병원등에서 간호사로 활동했고, 특히 한국전쟁때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환자와 전쟁고아들을 돌봐오다 미국으로 돌아와 이곳에 정착했다.

그녀의 집 정문에는 '부례문'이란 한글 명패가 걸려 있다. 그녀는 8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60년 경주 문화중고등학교를 재개교시키는 등 교육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남편의 한글 이름이고, 내 이름은 부마리아"라면서 "작년 11월 한국을 방문했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늘 한국을 사랑할 것이며 가슴에 새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으로 돌아와 한국 유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했던 그녀는 은퇴 후에는 '조선의 기독교 친구들'이란 단체에 가입해 북한돕기에 나서고 있고, 틈틈이 아프리가 말라위에 보낼 털실도 짜고 있다.

로이스 플라워즈 린튼(83) 할머니는 구한말 근대교육과 의료사역을 펼쳤던 유진벨 선교사의 외손자인 휴 린튼의 부인. 한글명이 '인애자'로, 한국전쟁 뒤부터 94년 순천결핵재활원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35년간 한국의 결핵퇴치에 일생을 바쳐왔다. 그녀의 6남매 자녀 중 '유진벨 재단'을 설립해 활동중인 둘째 스티븐 등 4형제가 모두 북한의 결핵퇴치 등 북한돕기에 나서는 등 린튼 집안은 4대째 한반도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린튼 할머니의 집은 지난달 미국을 방문했던 북한 대표단이 머물다 가는 등 블랙 마운틴을 방문하는 남북한 인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동네에 살면서 북한의 지하수 개발을 돕고 있는 셋째 제임스 린튼씨는 "한국과의 인연이 4대째가 되다 보니 남북한 구분없이 많은 분이 어머님 집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윌슨 박사는 1900년대 초반 조선에 파송되어 나병환자 요양소인 '애양원'을 세우고 56년까지 1만명이 넘는 조선인 나병환자를 돌봤던 인물이다. 그의 장녀로 한국에서 태어나 애양원에서 환자를 돌보며 선교활동을 했던 엘리자베스 탈마지(98) 할머니도 동네주민이다. 그녀는 "여섯 형제들이 모두 한국에서 태어났고, 평양외국인학교를 졸업한 뒤 선교사로 활동했다"면서 "2007년 이곳에서 4세대가 모여 윌슨가의 조선 선교 100주년을 기념했다"고 말했다.

 

 

 

선교사님들과 조선의 여학생들 

 


이밖에도 53년부터 90년까지 전주예수병원에서 간호부장으로 재직하고, 기독의학연구소 등을 설립했던 매리 씰(84) 할머니와 계성고와 장로교 신학대에서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며 기독교 교육에 앞장서온 메리 안네 멜로즈(86) 할머니도 이 동네에 살고 있다.

선교사들이 이곳에 모여 살게된 배경에 대해 제임스 린튼씨는 "블랙 마운틴의 몬트릿에 선교사들이 파송되기 전 마지막 교육을 받던 센터가 있고, 안식년 때 주로 이곳에 와서 휴가를 즐긴 인연 등이 작용한것 같다"면서 "인근 YMCA에는 선교사인 부모들과 떨어져 미국에서 공부중이던 자녀들이 방학 때 교육을 받던 센터가 있었던 점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블랙 마운틴이 미국 남장로교파의 중심지이고, 세계적인 기독교 부흥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인 고(故) 루스 그레이엄 여사가 고향인 이곳에 은퇴한 선교사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 점도 한몫을 했다. 루스 그레이엄 여사 역시 평양외국인 학교 출신으로, 선교사중에서 이 학교 출신이 많아 86년에는 블랙 마운틴에서 이 학교 동창회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과거에는 40여명이 거주하다 최근에는 2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 한국에서 8만여명의 간질환자를 간호하다 은퇴해 이 마을에 살던 레나벨 루이스 선교사는 올해 2월 10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104세 되는 한 선교사는 최근 자녀들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8일 오후 블랙 마운틴시내에 있는 장로교회에서는 이들을 위한 위문행사가 개최됐다. 한국의 기독교 TV인 CTS와 기독실업인연합회(CBMC)가 이 마을에 거주하는 은퇴 선교사들을 초청해 한국의 재건을 위해 젊음을 바친 선교사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워싱턴과 애틀랜타의 한인 200여명도 참석했다.

행사에는 인근 애쉬빌과 샬럿 등에 거주하는 선교사 40여명들도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애쉬빌에 거주중인 프리다 모리스(95) 할머니는 "1960년대 초반 배화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면서 "당시엔 지붕개량 등 도시화가 시작되던 시기였는데 최근에는 몰라보게 발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지만 가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은퇴 선교사들에게 한국 음식으로 저녁을 대접한 뒤 감사의 메달을 증정하고, 성악과 피아노 및 전통 부채춤 등 위문공연을 통해 선교사들을 위로했다.

행사에 동참한 칼 바틀렛 블랙 마운틴 시장은 "한국분들이 먼곳까지 찾아와 은퇴한 선교사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행사를 기획한 워싱턴 기독교방송의 김영호 회장은 "한국을 위해 청춘을 불사른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고, 기독실업인회 워싱턴 지회장인 박상근 변호사는 "모금운동을 통해 내년 5월에는 인근 빌리그레이엄 센터내에 한국초기 선교사 기념비를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