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962 재소자들에게 담요 보급 - 4 겨울철 멕시코의 여러 교도소들에 담요를 넣어주던 사진들입니다. 교도소 사역을 하는 가운데 겨울철에는 이 일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각 사동을 돌며 담요를 넣어주기도 합니다. 멀고 먼 Alaska OMC 교회에서 오셨던 단기 선교팀의 협조로 담요를 넣어주며... 겨울철 사역으로는 아주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어렵지만 금년에도 담요 전달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2020. 11. 9. 🎬 영화 상영 : 701 - 705 전에 이용하던 J 블로그가 문을 닫으며이렇게 다음 블로그로 자료들을 옮겨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왕이면 좀 정리를 하자... 하며2019년까지의 690회까지는 한 포스트에 10회씩의 사진들(보통한 회에 2장 정도씩)을 정리하여 올렸습니다. 691회부터는 2020년이고 그래서 한 포스트에 5회분씩 하며사진들도 한 4-5장씩 정리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701회 - 2020.2. 18. Mexicali 재활원 멕시칼리 교도소 영화 상영 마치고 저녁에 한 재활원에 들려 상영한 것입니다. 돌아오던 길... 밤도 늦었고... 안개가 너무나 자욱해서 아주 혼났습니다. ============= ============= =============.. 2020. 11. 9. [멕시코 이주 100주년] <5> 희망과 미래 [멕시코 이주 100주년] 희망과 미래 《“키에네스(Quien es·누구냐)?.” “치노(Chino·중국인들) 왔어.” 최근 멕시코 메리다 인근 지역의 한인 가정을 찾은 율리세스 박 메리다 한인후손회장(64)은 잠시 당황했다. 한인 5세대인 어린 소녀가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그를 잠시 쳐다본 뒤 어머니에게 중국인이 찾아왔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뭔가 메울 수 없는 공백이 느껴졌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박 씨는 한인 후손들에게 정체성을 찾아주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지 다시 한번 절감했다.》 멕시코시티에 사는 아라셀리 김 씨(31·여)는 코레아노의 긍지는 물론이고 메히카노(멕시코인)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한 한인 4세. 한국과 멕시코의 축구경기가 열린다면 누가 이겨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2020. 11. 9. [멕시코 이주 100주년] <4> 쿠바 혁명의 회오리 [멕시코 이주 100주년] 쿠바혁명의 회오리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집필한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이 말처럼 한인 이민자 ‘애니깽’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잘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헤밍웨이는 글을 쓰기 위해 쿠바를 찾았지만, 멕시코 애니깽(Henequen·용설란의 일종) 농장에서 지칠 대로 지친 한인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카리브 해를 건넜다.》 스페인어를 배운 한인 1.5세들에 의지한 멕시코 한인 274명은 1921년 3월 11일 쿠바 마나티 항에 도착했다. 국적 문제로 17일간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나라 잃은 설움을 삼켜야 했던 것도 잠시, ‘일거리도 많고, .. 2020. 11. 9. 2010 : BC 한인 선교사 모임 멕시코에 많은 한인 선교사님들이 사역하고 있습니다. 멕시코가 워낙 커서 전체가 모이기는 힘들고 멕시코 북서부 BC(Baja California)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이 가끔 모인 일이 있습니다. 어느 해 1박 2일로 멕시칼리에서 사역하시는 김용인 선교사님이 호스트가 되어 BC(Baja California)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이 모인 일이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 - 최대한의 정성과 맛이 담겨있는 식사였습니다. 이름하여 월남 보쌈... 도착 예배 - 김용인 선교사님의 설교와 광고... 단체 사진 - 몇 번 더 찍겠지만 우선 예배후 1장 찍었습니다. 복지 센터 - 커다랗게 신축 중인 장애자 복지 시설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환영 문구 - 호텔 입구에 우리를 환영하는 빌보드가 있어서 한 장 찰.. 2020. 11. 9. [멕시코 이주 100주년] <3> 멕시코의 코레아노 [멕시코 이주 100주년] 멕시코의 코레아노 멕시코 이주 초기, 한인들은 일제의 창씨개명 못지않은 설움을 겪어야 했다. 멕시코 농장주와 관리인들이 한국식 발음이 어렵다며 이름을 제멋대로 바꿔 불렀기 때문이다. 김 씨는 킹(King)으로, 고 씨는 코로나(Corona), 최 씨는 산체스(Shancez)로 성이 바뀌어 버렸다. 또 이 씨는 가르시아로, 양 씨는 야네스로, 허 씨는 히메네스로 돌변했다. 일본이 1939년 한국인의 창씨개명을 법제화해 강제적으로 시행한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성을 빼앗긴 것. 멕시코시티의 한인문화원 임용위(任龍尉) 실장이 지난해 말 한인 멕시코 이주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대사관 강당에서 공연한 모노드라마 ‘굿나잇 코리아’의 주인공 오크만도 ‘억만’에서 바뀐 이.. 2020. 11. 8. [멕시코 이주 100주년] <2> 한인 후손의 빛과 그늘 [멕시코 이주 100주년] 한인 후손의 빛과 그늘 "언젠가는 내 힘으로 유카탄에서 제일 큰 공장을 만들어 운영할 거야….” 멕시코 유카탄 주 메리다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3세 율리세스 박 씨(64)는 어린 시절부터 목표가 확실했다. 그는 지금 유카탄 주에서 유일한 자동차 매연검사소를 운영하는 지역 유지다. 현지인들조차 스스럼없이 “율리세스가 내 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율리세스 씨 집안의 성공=율리세스 씨 집안의 멕시코 정착 역사는 한국에서 옷 장사를 했던 할아버지(박승준·안토니오 박 김)가 희망과 기대 속에서 이민 길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메리다의 집 앞에 선 율리세스 박씨. 항상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갖고 살고 있다는 그는 한인 후손들이 애니깽 작업을 했던 조상들의 생.. 2020. 11. 8. [멕시코 이주 100주년] <1> 노예 이민의 굴레 [멕시코 이주 100주년] 노예 이민의 굴레 《미국 하와이 이민이 시작(1902년 12월)된 지 약 2년 만인 1905년 4월 4일. 제물포항을 떠난 한인 1033명은 영국 상선 일포드 호에 몸을 싣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묵서가(墨西哥)’로 불리던 생소한 땅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애니깽’(Henequen·용설란의 일종) 농장에 4년간 계약노동 형태로 고용된 이들은 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가시에 찔려 가며 고통스러운 작업을 했다. 이민자들은 애니깽 농장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멕시코 유카탄 농장주협회에서 파견한 대리인 존 마이어스(영국인)가 대륙식민합자회사 서울지부를 통해 모집한 사람들이었다. 착취에 가까운 낮은 임금으로 돈도 벌지 못한 데다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는 돌.. 2020. 11. 8.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2. 하와이 초기 이민의 애환 1905년 1천 명 이상의 한인들이 멕시코로 이민와서 엄청 고생했던 멕시코 이민 선조들... 그 [멕시코 & 쿠바 한인이민사]를 다루기 전에 먼저 이 하와이 이민자들에 관한 글이 있어서 참고로 먼저 이렇게 올립니다. 제가 전에 이용한 다음 카페에 2007년 4월 30일 스크랩했었네요. ========================================================== 사탕수수밭에서 월스트리트까지 하루 70센트 받고 12시간씩 중노동 노총각들 '사진 맞선'으로 신부 맞아 진주만 공습 계기 공사일감 늘어 남국의 관광지 하와이의 햇살은 유리처럼 맑다. 청명한 하늘에서 깨끗한 공기를 타고 뻗어 내려온 햇살은 하와이 주민들에게는 사철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자연의 축복이기도 하다. 그러나 1백년.. 2020. 11. 7. 이전 1 ··· 74 75 76 77 78 79 80 ··· 10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