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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후손35

회상 : 멕시코 한인들의 삶과 노동 / 최병덕 - 2 - 전면에 이어 한인회 대표는 한 달 후 새로운 모임이 있음을 공지하면서 폐회를 선포했다. 간부로 뽑힌 세 사람의 선서식이 있었고, 이들에게 나머지 간부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나자 '대한인국민회' 대표 자격으로 온 방화중씨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다시 돌아갔다. 다음 달에도 정기 총회가 열렸고, 마찬가지로 나머지 간부들이 임명되어, '이사회'의 빈자리는 모두 채워졌다. 우선 세 명의 집행부 이사들에 이어 아래 부서의 담당 간부들이 임명되었다. 1. 감사실장 2. 감사 3. 언론 및 대외홍보 담당 4. 교육 담당 5. 사법 담당관 6. 정책 담당관 한인회 잡행부와 행정부서 간부들에 대한 임명이 일단 끝나자 그들은 매월 1일 정기총회를 갖기로 원칙을 정했고,.. 2021. 1. 18.
회상 : 멕시코 한인들의 삶과 노동 / 최병덕 - 1 교포역설(僑胞歷說) 1973년 최병덕이 멕시코 이민 생활의 경험을 자전적으로 저술한 역사서로 원래는 스페인어로 된 타자본(打字本)인데, 한국어로 번역한 책 이름은『교포역설(僑胞歷說)』이다. 이영숙이 『유까딴의 첫 코리언』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하여 발간하였고, 그 뒤 서성철이 『회상 :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한인들의 삶과 노동』으로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하였다. 최병덕의 멕시코 이름은 호세 산체스 팍(Jose Sanchez Pac)이다. 아버지 최정식(崔貞植)은 1905년에 멕시코로 배를 타고 이민하였던 이민 1세대인데, 어렸을 때 이름은 인천에서 출생하였다고 하여 인출(仁出)이라 하였다. 최병덕은 1962년에 한국과 멕시코가 국교를 맺을 때 멕시코시티 한인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1985년에 사망하였다. 이.. 2021. 1. 18.
[멕시코 이주 100주년] <5> 희망과 미래 [멕시코 이주 100주년] 희망과 미래 《“키에네스(Quien es·누구냐)?.” “치노(Chino·중국인들) 왔어.” 최근 멕시코 메리다 인근 지역의 한인 가정을 찾은 율리세스 박 메리다 한인후손회장(64)은 잠시 당황했다. 한인 5세대인 어린 소녀가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그를 잠시 쳐다본 뒤 어머니에게 중국인이 찾아왔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뭔가 메울 수 없는 공백이 느껴졌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박 씨는 한인 후손들에게 정체성을 찾아주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지 다시 한번 절감했다.》 멕시코시티에 사는 아라셀리 김 씨(31·여)는 코레아노의 긍지는 물론이고 메히카노(멕시코인)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한 한인 4세. 한국과 멕시코의 축구경기가 열린다면 누가 이겨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2020. 11. 9.
[멕시코 이주 100주년] <4> 쿠바 혁명의 회오리 [멕시코 이주 100주년] 쿠바혁명의 회오리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집필한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이 말처럼 한인 이민자 ‘애니깽’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잘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헤밍웨이는 글을 쓰기 위해 쿠바를 찾았지만, 멕시코 애니깽(Henequen·용설란의 일종) 농장에서 지칠 대로 지친 한인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카리브 해를 건넜다.》 스페인어를 배운 한인 1.5세들에 의지한 멕시코 한인 274명은 1921년 3월 11일 쿠바 마나티 항에 도착했다. 국적 문제로 17일간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나라 잃은 설움을 삼켜야 했던 것도 잠시, ‘일거리도 많고, .. 2020. 11. 9.
[멕시코 이주 100주년] <2> 한인 후손의 빛과 그늘 [멕시코 이주 100주년] 한인 후손의 빛과 그늘 "언젠가는 내 힘으로 유카탄에서 제일 큰 공장을 만들어 운영할 거야….” 멕시코 유카탄 주 메리다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3세 율리세스 박 씨(64)는 어린 시절부터 목표가 확실했다. 그는 지금 유카탄 주에서 유일한 자동차 매연검사소를 운영하는 지역 유지다. 현지인들조차 스스럼없이 “율리세스가 내 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율리세스 씨 집안의 성공=율리세스 씨 집안의 멕시코 정착 역사는 한국에서 옷 장사를 했던 할아버지(박승준·안토니오 박 김)가 희망과 기대 속에서 이민 길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메리다의 집 앞에 선 율리세스 박씨. 항상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갖고 살고 있다는 그는 한인 후손들이 애니깽 작업을 했던 조상들의 생.. 2020. 11. 8.
[멕시코 이주 100주년] <1> 노예 이민의 굴레 [멕시코 이주 100주년] 노예 이민의 굴레 《미국 하와이 이민이 시작(1902년 12월)된 지 약 2년 만인 1905년 4월 4일. 제물포항을 떠난 한인 1033명은 영국 상선 일포드 호에 몸을 싣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묵서가(墨西哥)’로 불리던 생소한 땅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애니깽’(Henequen·용설란의 일종) 농장에 4년간 계약노동 형태로 고용된 이들은 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가시에 찔려 가며 고통스러운 작업을 했다. 이민자들은 애니깽 농장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멕시코 유카탄 농장주협회에서 파견한 대리인 존 마이어스(영국인)가 대륙식민합자회사 서울지부를 통해 모집한 사람들이었다. 착취에 가까운 낮은 임금으로 돈도 벌지 못한 데다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는 돌.. 2020. 11. 8.
2009 : Campeche에서 치렀던 전통혼례식 멕시코 시티에서의 전통 혼례식에 이어 Campeche에서도 한인후손들을 대상으로 전통혼례식을 행하였습니다. 한국 전통 문화를 알린다는 의미도 있고, 한복의 아름다움도 알리는 계기다 되었습니다. 위의 지도 4번이 Campeche입니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한인 후손들을 대상으로 한국 전통 혼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제가 통역을 하였습니다. 정말 날씨도 뜨겁고, 전통 혼례 용어도 모르고 아무튼 이리저리 꿰어 맞추느라 고생했지만 생각보다 부드럽게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LA에서 같이간 일행들입니다. 아, 태극기...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런 모임에 멕시코 전통 춤이 없으면 안되지요... 한인 후손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전달하고... 시간이 흐르며 한국말로 "배고파요", "빨리 빨리", 사진 찍을 때.. 2020. 11. 5.
2009 : 멕시코 시티에서 치렀던 전통혼례식 오래 전 LA의 한 문화선교 단체와 함께 멕시코 시티, Merida, Campeche, Cancun을 다녀왔습니다. Merida는 1905년 1천명 이상 단회의 한인 이민이 있었던 곳입니다. 물론 지금도 많은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화선교 단체에서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이 행사의 사회로 멕시코에서 한복을 다 입어봤습니다. Rodolfo Kim's Family... 아버지와 어른들이 무척이나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고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너무 서럽게 울던 모습이 기억에 선합니다. 한 한인 후손... 영락없는 시골 아저씨 입니다. 저도 진즉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때 동행했었습니다. 이 4개 도시에서 모두 한인 후손들을 만났습니다. 멕시코 시티와 깜뻬체에서는 한국 전통 혼례식도 거행하였습니다.. 2020. 11. 3.